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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in, The Burgher of Calais
칼레의 시민... 노블레스 오블리제...
1347년 도버해협 양쪽의 영구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때의 일입니다.. 1년 가까이 영국의 공격을 막던 프랑스의 북부도시 칼레는 원병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백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칼레시의 항복사절은 도시 전체가 불타고 모든 칼레의 시민이 도살되는 운명을 면하기 위해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였습니다. 완강한 태도를 보이던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항복의 조건을 내 놓았습니다.
"좋다. 칼레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동안의 어리석은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 이 도시에서 가장 명망이 높던 대표적인 시민 대표를 골라 목에 교수형에 사용될 밧줄을 목에 걸고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로 영국군 진영으로 가서 도시의 열쇠를 건넨 후 목을 매 처형 받아야 한다."
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6명이 그들을 대신해 죽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용감하게 6명이 선뜻 나섰습니다. 모두 그 도시의 핵심인물이며 절정의 삶을 누리던 부유한 귀족이었습니다. 칼레에서 가장 부자인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가장 먼저 자원했습니다.
"자 칼레의 시민들이여.. 나오라.. 용기를 가지고..."
그러자 시장이 나섰습니다. 상인이 나섰습니다. 그의 아들도 나섰습니다. 드디어 일곱 명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빠져도 되었지요. 제비를 뽑자는 말도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생피에르는 "내일 아침 장터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 제의 했고 이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들의 고통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여섯 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생피에르가 오지 앟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궁금했습니다. 모두 안 나와도 그는 나올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죽음을 자원한 사람들의 용기가 약해지지 않도록 칼레의 며예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이들 6명이 처형되려던 마지막 순간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왕비의 간청을 듣고 그 용감한 시민 6명을 살려주었습니다.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1895년 칼레시는 이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기 위해 생피에르에 조각상을 제작하기로 하고 조각가 로댕에게 의뢰했습니다. 이 작품이 바로 <칼레의 시민> 입니다. 1895년 6월 3일 기념상이 제막되었습니다.
높은 신분에 따르는 윤리적 의무를 나타내는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칼레의 영웅들은 이 말의 가치를 몸소 실천해 보였습니다...
로댕은 1884년 칼레시로부터 '칼레의 시민' 주문을 받게 됩니다. 작품을 완성해 칼레 시청 앞에 설치한 것이 1895년... 10년이 넘는 세월을, 작품 '칼레의 시민'에 바쳤습니다. 로댕은 10년의 세월을 바친 이 조각을 좌대 없이, 칼레의 시청 앞 땅바닥에 내려 놓습니다.
'칼레의 시민들이 고통으로 얼그러진 죽음의 그림자를 목에 두른 가장 위대한 6명의 영웅들과 함께 거리를 거닐 수 있도록...'
아마도 칼레의 시민들은 당연히 선조들의 영웅적인 모습을 기대했을 것 입니다. 하지만, 로댕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그러나 운명에 준종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로댕은 두려움과 맞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바로 영웅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고하 함이었습니다. 아마도, 칼레시의 시민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그 거리를 지나며 죽음을 향해 전진하던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들을 생각하며 시청앞을 오가고 있지나 않을까 합니다.
i think....
장관들의 기름값으로 30억의 세금이 나간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래서야 되냐고 지탄을 먼저합니다. 하지만, 4천만이 사는 이 나라를 지키는 장관들에게 그 이상을 해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내가 존경해야할 나라일을 하는 분들이 '칼레의 시민'과 같은 정신을 가진 분들인지는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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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을 한 이 원칙들은 간단하고 현실적이어서 누구나 다 마음만 먹으면 실천할 수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물론 실천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실천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부지런하지 않기에, 이 원칙을 알고도 실천을 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이겠지요.
벤자민 플랭클린은 그의 삶을 훌륭하게 마무리를 하면서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내 후손들이 이 원칙(벤자민 플랭클린의 13가지 원칙)을 본받아서 이익을 얻게 되길 희망합니다.” 말하자면 이같은 삶의 원칙을, <부의 원천>으로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는 얘기 입니다. 돈이 되는, 삶의 원칙이라는 것이지요.
자, 오늘은, 벤자민 플랭클린의 13가지 원칙을 한번 알아봅시다.
첫째는 절제 입니다. 둔해질 때까지 먹는 것,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시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둘째는 침묵 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말 이외에는 말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찮은 대화는 아예 하지 않는게 좋다는 것 입니다.
세번째는 정돈 입니다. 정리정돈은 인생의 기본이겠지요.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두라는 겁니다. 모든 일을 또 정리정돈할 시간을 가지라는 것 입니다.
네번째는 결심 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결심을 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결심한 일은 반드시 실천을 하라는 겁니다.
다섯번째는 검약 입니다. 다른 사람과 내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하기 위한 것 이외에는 돈 지출을 하지 말하는 겁니다. 한 푼도 낭비를 하지 말하는 겁니다.
여섯번째는 근면 입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항상 부지런하게 무엇인가를 하라는 것 입니다. 불필요한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말하는 것 입니다.
일곱번째 성실 입니다. 남에게 해가 되는 속임수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 입니다. 항상 올바르고 공정하게 생각을 하고, 이에 따라서 말을 하라는 것 입니다.
여덟번째는 정의 입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하지 말고, 남에게 주어야 할 이익을 주지 않는 잘못도 하지 말라는 것 입니다.
아홉번째는 중용 입니다. 항상 극단을 피하라는 것 입니다. 만일 손해를 입었다고 한다면, 당연히 손해를 입을만 하다고 생각을 하고, 손해를 분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 입니다. 참으라는 것이지요. 손해를 입는 것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을 억제하라는 것 입니다.
열번째는 청결 입니다. 몸과 옷, 사는 곳을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라는 것 입니다.
열한번째는 평정 입니다. 피할 수 있는 일이나 하찮은 일로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라는 것 입니다.
열두번째는 순결 입니다. 건강이나 종족 본능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기운이 빠지거나 몸이 약해지게 하는 성생활은 삼가라는 것 입니다.
열세번째는 겸손 입니다.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으라고 벤자민 플랭클린은 말을 했습니다.
유상원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 기자, wise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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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는 1928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의사시험에 합격하였고 의사가 되어서 편안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일생을 바꾼 사건을 경험한 후로 안락한 삶을 버리고 혁명가의 길에 뛰어들게 됩니다.
대학생시절 체는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이것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로 각색하기도 했죠).
여행 도중에 미국과 유럽의 농장주들에게 박해받고 있는 남미의 가난한 농민들과 빈민들을 목격하게 되었는데요. 이후 체는 빈부격차, 계급문제 등에 대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열심히 공부하였고 결국 자본주의와 타협할 수 없는 공산주의 혁명가가 됩니다.
이후 28살에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게 되었고 둘은 힘을 합쳐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켜 당시 자본주의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던 독재정부를 무너뜨리고 쿠바혁명을 달성합니다.
혁명 후에 쿠바재무국장이 되었는데요. 체는 본래 보헤미안적이고 낭만적인 성격의 소유자이였기에 한곳에 안주하는 생활에 실증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37세일때 공산주의의 모토인 세계혁명을 실천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앙골라에 건너가 그곳에서 게릴라전을 펼쳤지만 실패하고 39세때 다시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에 참여하였다가 포로로 잡혀 총살됩니다.
.......................
체 게바라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립니다. '세계혁명' 이라는 대업을 이루기위해 직접 실천하였던 위대한 영웅적인 면모와, 한편으로는 잔인하고 무능력한데다가 과대망상증과 소영웅주의에 빠진 몽상가라는 두 평가가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땐 두개 다 맞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체 게바라가 쿠바재무국장이었던 시절 쿠바의 경제는 나락으로만 떨어졌고 게릴라전을 펼쳤을 때도 그의 작전능력과 정보수집능력은 매우 형편없었습니다. 볼리비아에서는 그의 오판으로 인해 부하들 뿐만아니라 그자신도 총살되었습니다. 또한 체는 매우 잔인했는데요. 혁명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회의적인 생각을 가진 부하들은 자신이 직접 그자리에서 총으로 쏴죽이기도 하고 쿠바혁명에 반대하던 시민들은 처형시켜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체가 확실히 뜨거운 피를 가진 세기의 풍운아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겠죠. 쿠바 장관이었던 시절에는 몸소 농민들과 함께 농사일을 하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등 단 한시도 나태해지지 않고 노동을 몸소 실천하였습니다. 또한 안주하지 않고 전세계를 누비며 대업을 이루기위해 발로 뛰어다닌 그 정열은 체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에는 불가능한 이상을 품자"
체의 이 명언에 그에게 배울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나이에 의사로서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것을 스스로 마다하고 혁명의 길에 뛰어들어 39세에 요절할 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삶을 살아온, 불꽃같이 타오르는 혁명가. 자신이 한번 품은 이상과 대의에 목숨까지 내걸고 직접 뛰어들 수 있었던 그 패기와 정열. 자신의 게릴라동지들과 함께 정글이나 오지를 전전하며 동고동락했던 그 우애.
보통의 사람들은 부귀공명을 좇고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바리죠. 보통의 사람들은 젊었을 적 자신이 품었던 이상과 정열을 잃은 채 숨막히는 사회에 동화되어 무미건조하게 살아가죠. 보통의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거나 무모한 것에는 현실적인 판단이 앞서 그것을 마다하려고 하죠.
체의 불꽃과도 같은 인생은 세상에 파묻혀사는 우리가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를 다시끔 되돌아보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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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델 카스트로 역시 이전 독재자 바티스타에 비하면 나은 편이고 교육과 의료에 힘써 쿠바 출신 석사, 박사학위자가 부쩍 늘어났고 전체 시민의 평균수명은 78.2세까지 올라갔지만 어쨌든 독재자라는 비난은 면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전세계의 사회당, 공산당이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사회주의 내지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반면에 쿠바는 아직 정치적 자유가 별로 확보되지 못했지요. 쿠바의 인권실태는 1970~80년대의 한국과 비슷한 정도라고 합니다(엠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
그런 반면에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처럼 오명을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마침 체 게바라가 살해된 직후인 1968년 전유럽과 미국에서 반전평화운동, 신문화운동 등등 학생과 지식인층, 젊은 직장인층까지 참여한 거대한 규모의 시위가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그들 시위대의 우상으로 방금 죽은 체 게바라가 등장합니다. 이때부터 위로 눈 치켜뜨는 체 게바라 초상화가 전세계인들에게 알려졌지요.
또한 1980~1990년대 남미의 정치적 민주화 과정에서 극우 독재자들이 저지른 만행들이 널리 알려졌는데(이게 작은 규모의 만행이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니카라과의 소모사만 30만명, 과테말라 우익군사정권은 20만여명을 살해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남미인들에게 또한번 체 게바라가 부각되었지요.
2. 체 게바라가 유난히 존경을 받는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1) 공산주의자 치고는 인명을 존중하는 편이었다.
체 게바라는 군율에 대단히 엄격해 주민 물건 빼앗아온 소년병을 총살해버린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바티스타군 포로들에게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었지요. 본인이 의사라서 치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게릴라로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한 예로, 훗날 체의 최측근이 되어 볼리비아행에도 동참한 다리엘 알라르콘 라미네스는 바티스타군에 정보를 제공하던 사람이었죠. 대숙청, 문화대혁명, 킬링필드나 봐오던 사람들에게 체 게바라는 호치민과 더불어 신선한 충격이었을 겁니다.
2)소련으로부터의 자주성을 주장했다.
대체로 미국이든 소련이든 강대국에 사대하는 위성국의 지도자들이 더욱 폭력적이고 잔인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약한 지지기반을 보충할 수 있으니까요. 스탈린이 내세운 대위 출신 김일성은 자신보다 좌파활동경력에 있어 훨씬 공이 많은 남로당파, 국내파, 연안파, 소련파 공산주의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런 이치를 간파한 모양인듯, 체 게바라는 쿠바 공산당원들에게 항상 소련으로부터의 자주성을 강조했습니다. 민중의 지지와 지식층(여론형성층)의 호의적인 평가를 얻기 위해서는 자주적이어야 한다고.. 지금 북한이 주체사상 주체사상 하지만 그것은 과거 소련의 간섭 하에서 정착된 숙청체제의 연장에 다름아니지요.
3)서구인을 건드리지 않았다
체 게바라가 서구인들로부터 호감을 산 이유에는 그가 외국인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도 주효하게 작용합니다. 오사마 빈 라덴,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어떤 저항세력보다도 동정을 살수 없는 것은 그가 서구 민간인을 죽였기 때문이지요. 체 게바라는 위해를 가하기는 커녕 미국의 언론인들의 취재요청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를 서구인, 서구사회에 개방적인 인물로 보이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첨언하면 공산주의라고 하여 다 나쁘다고만 볼수는 없습니다. 서유럽과 일본공산당은 이미 냉전종식 수십년전에 의회민주주의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좌파정책을 추구하기로 방침을 정했지요. 무엇이 어찌되었든 중요한 것은 정치적, 시민적 자유의 인정 여부입니다.
쿠바와 베트남의 공산주의는 비록 이러한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으니 전망이 밝을수는 없었지만 외세 간섭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는 것, 그리고 이전의 체제보다 낫다는 신념을 시민들에게 제공한 것은 사실이죠.
3. 체 게바라의 죽음은 볼리비아 정부보다 미국 정부가 더욱 강력하게 재촉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볼리비아의 대통령이던 바리엔토스는 체 게바라를 죽이면 남미인들이 들끓고 일어날까봐 처형에는 반대했지만, 미국에서는 합참의장 렘니처 장군이 체 게바라 처형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분위기가 그쪽으로 흘러 바리엔토스에게 체 게바라 처형압력을 가하게 됩니다.
출처 : 장 코르미에 저, <체 게바라 평전>, 실천문학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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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객의 구매성향은 단순히 제품의 특징이나 제품이 주는 이익에 구매 성향이 좌우되지 않습니다. 합리적인 제안보다는 제품에 담긴 이야기나 자신만의 감성을 자극하여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성중심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고 구매를 하고 있습니다. 감성이 언제부터 이렇게 소비자들의 구매니즈(Needs)를 바꿔놓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대의 대세가 감성사회인 것은 부인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백화점 , 대형할인점에 이은 3차 유통혁명시대의 키워드로 온라인과 함께 “감성’을 꼽고 있을 정도 입니다. 조사에서도 소비자들의 소비성향을 조사한 결과 소비자중 80%는 감성적인 이유로 물건을 사고 나머지 20%는 논리적인 판단에 의해 물건을 산다고 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물건을 살 때 조금은 비싸지만 남한테 꿀리지 않기 위해서 브랜드를 고집하거나 , 쇼윈도에 잘 매칭된 코디(Cody)에 내가 입으면 어울릴 것 같은 자뻑(?)에 빠져 구매했거나 , 백화점에서 은은하고 편안한 음악에 빠져 쇼핑을 오래 했거나 하는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든 행동은 고도로 조합된 감성마케팅에 이끌려 구매를 한 것입니다. 감성을 활용한 마케팅은 고객의 구매를 자극하기 위하여 유형의 상품 가치보다 개개인의 감성코드에 초점을 맞춰 개인의 경험이나 무형의 이미지가 전달하는 “감성가치제안(Emotion Value Offer)에 반응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입니다. 우린 가끔씩 “필(Feel) 이 꽂히다” 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필(Feel)이 통했다.”는 말도 합니다. 이렇게 애기 할 때 우리가 느끼는 일부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감성에 전달한 느낌을 애기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필(Feel)이라는 것은 다양한 속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생각했던 꿈 일수도 있구 , 이제까지 했던 경험 일 수도 있구 , 이제까지 가졌던 어떤 느낌이 될 수 도 있구 오감에 의한 전달 일 수도 있는 필(Feel)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한마디로 감성을 활용한 마케팅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필(Feel)을 꼽는 것”을 말하고 , 고객입장에서는 “필(Feel)이 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필을 꼽고 , 통하도록 하는 수단으로 고객의 Feel을 자극 할 수 있는 다양한 이상형 , 경험 , 느낌 , 오감 등의 총체적 감성들을 활용 하는 것입니다.
고객은 왜 “Feel” 을 요구하는가 ?
그런데 갑자기 왜 고객들은 이제까지 합리적인 이성에 의한 판단에서 자신도 모르는 “Feel”를 갑자기 꽂기를 원했을까요? 아마도 이러한 질문은 소비자들의 변화에서 먼저 찾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갑자기 대학 때 읽었던 소설이 생각나는데 “내가 누구인지 말 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제목처럼 예전에 소비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지 못하고 말할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매스미디어의 발달에 따른 남들과 차별화 된 개인의 개성이 중요시 되면서 “개인의 감정과 경험”에 충실해 졌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구매하도록 하는 가장 큰 동기는 논리적인 데이터나 사실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과 경험”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본래 자신이 사고 싶은 대상에 편안함을 느낄 때, 뭔지 모르게 신뢰가 갈 때, 모든 것이 기분 좋고 자연스러울 때 비로소 구매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기분이 불편하거나, 누군가에게 강요 당하는 기분을 느끼거나, 언짢은 경험이 있다면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구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크고베(Marc gobe’)는 “감성디자인 감성브랜딩” 에서 감성마케팅 시대에는 이제까지 개인이 가지지 못했던 감정과 경험에 충실한 “개인화된 관계의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며 전통적 마케팅 과 감성마케팅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번째가 소비자에서 사람으로 변화입니다. 이제까지 기업은 소비자를 애 다루듯이 잘 구슬려 기업이 목적하는 바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또한 기업과 분리되어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하여 전쟁에서나 쓰이는 온갖 전략이나 전술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꼬~옥 이겨서 “소비(消費)”를 하는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소비의 대상” 이 아닌 사람으로서 존중 받고 개인으로서의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사람다움” 이라는 것입니다. 남들과 똑 같기보다는 자기자신의 개성을 표출하여 자아실현 할 수 있는 욕망에 충실한 소비자이기를 바라는 거죠!! 두번째가 상품에서 경험으로 변화입니다. 백화점에 가면 고객들이 상품을 두고서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수영복 매장에서는 지난 여름날 바다에서 어쩌고저쩌고 하는 추억을 의류매장에서는 누가 이옷과 똑 같은 옷을 입었더니 예쁘더라 고하는 애기 등 시시콜콜하게 백화점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넘쳐 나오고 있습니다. 고객은 이제 상품을 구매하기 보다는 상품에 담긴 이야기나 경험을 구매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고객은 이러한 상품을 구매하므로 자기자신의 개성을 강조 할 수 있으며, 경험이나 느낌을 충족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세번째가 아이덴티티 (Identity)에서 개성으로 변화입니다. 고객은 기업이 제시한 아이덴티(Identity)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성을 표출 할 수 있는 상품을 구매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제시하는 아이덴티티(Identity)는 고객의 입장에서는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알아두어야 할 하나의 사항이나 관심에 지나지 않다는 것입니다. 고객은 이제 “똑같음의 부여”보다는 개성이라는 “남들과의 다름”를 통하여 자신을 표출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네번째가 기능에서 느낌으로의 변화입니다.
고객은 제품을 조목조목 따지기 보다는 제품이 전달하는 경험이나 디자인의 느낌등에 좌우되는 경향이 많습니다. “충동구매”라는 말처럼 제품의 주는 순간적인 느낌에 이끌려 구매를 해버리고 마는 것 입니다. 고객이 받는 순간적인 느낌은 다양한 요소들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쇼윈도에 화려한 디스플레이(Display)된 웨딩드레스를 보면서 사랑에 대한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며 ,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커피향을 통해 편안함을 느낌을 받기도 하며 , 불량식품을 보면서 옛날 초등학교 시절을 추억에 빠지기도 하는 등 고객은 제품을 통해 다양한 느낌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다섯번째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에서 대화로의 변화입니다.
여섯번째가 서비스(Service)에서 관계로의 변화입니다. 사람은 사회에서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마케팅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케팅도 끊임없이 고객과의 관계를 맺어야 지속적인 구매를 창출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객들이 원하는 관계는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서 일시적인 선심이 아니라 좋은 느낌이나 신뢰를 통한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통적인 마케팅에서는 고객을 일방적인 상품 판매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였지만 감성 마케팅에서는 상호존중 해야 하는 동반자로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객 개개인은 자기자신의 개성과 경험을 존중하며 지속적인 좋은 관계를 맺어나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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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인생의 점들을 잇는 것(connecting the dots)에 대해서입니다.
전 리드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 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하다가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위해 대학을 나온 양부모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었죠. 하지만 제가 태어난 순간에 변호사 부부는 마지막 순간에 여자 아이를 입양하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대기자 명단에 있던 제 양부모들은 한밤중에 이런 전화를 받게 됩니다.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입양하시겠습니까?" 양부모님은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죠."
그런데 양어머니는 대졸도 아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안 나와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몇 달 후 양부모님이 저를 대학까지 가르치겠다고 약속한 후에야 친어머니는 입양에 동의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순진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퍼드대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6개월 후 대학생활은 그만한 가치가 없어보였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또 대학교육이 그것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알 수 없었습니다.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을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잘 될 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 돌아 보았을 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 후엔 재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보다 더 흥미 있어 보이는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5센트짜리 콜라병을 팔아 끼니를 때우기도 했습니다. 일요일이면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을 걸어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순전히 호기심과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훗날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드리죠. 당시 리드 칼리지는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와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 손으로 아름답게 그린 서체 예술이었습니다. 정규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으므로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 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글자체의 요소인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아름답고, 유서 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어서 전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 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PC에는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가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가 미래와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그 무엇이든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현재가 미래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여러분의 가슴을 따라 살아갈 자신감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험한 길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모든 차이를 빚어냅니다.
두 번 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제가 차고에서 애플사를 세운 것은 제가 20세 때 일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 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작품, 매킨토시를 출시했고 전 30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어떻게 자기 회사에서 해고당할 수 있냐고요?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1년 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말이죠.
저는 인생의 초점을 잃어버렸고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배 벤처 세대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 같았습니다. 제게 넘겨진 배턴을 놓쳐버린 것 같았습니다.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창업자)를 만나 이렇게까지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실패의 본보기였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습니다.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성공이란 중압감 대신 찾아온 초심자의 가벼움, 불확실함.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후 5년 동안 저는 'NeXT'와 'Pixar'를 세우고 지금은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Pixar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NeXT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NeXT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입에 쓴 약이었지만 제게는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인생이 배신하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저를 계속 움직이게 했던 힘은 제 일을 사랑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연인이 여러분에게 의미하는 것처럼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은 여러분의 삶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이고 여러분이 위대하다고 믿는 그 일을 하는 것만이 진정한 만족을 줄 것입니다. 위업을 달성하는 것은 당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 입니다. 그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세요. 현실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전심을 다해서 찾아내면 그 때는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위대한 관계들이 그러한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더 나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추구하십시오. 안주하지 마십시오.
세 번 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매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위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 글에 감명 받은 저는 그 이후로 지난 33년 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며칠 연속 'No'라는 답을 얻을 때마다 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곧 죽는다'는 생각은 인생의 결단을 내릴 때마다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의 두려움은 '죽음' 앞에선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죽을 몸입니다. 그러므로 가슴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저는 1년 전쯤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악성종양이 보였습니다. 그때까진 췌장이 뭔지도 몰랐죠. 의사들은 거의 치료할 수 없는 종류의 암이라고 했습니다. 또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 밖에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 동안 해줄 것을 단 몇 달 안에 다 해내야 된다는 말이었고 가족들이 임종할 때 쉬워지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조직검사를 받았는데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 췌장에서 암세포를 채취하는 조직검사였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하면서 갑자기 울먹거리기 시작했답니다.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희귀한 종류의 췌장암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감사하게도 지금은 완치되었습니다.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 십 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지 않길 바랍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죽어서까지 가고 싶어 하진 않죠.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죽음은 삶을 대신하여 변화를 만듭니다. 죽음은 구세대를 대신하도록 신세대에게 길을 터줍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곧 신세대입니다. 그러나 머지않아서 여러분도 구세대가 되어 사라져 갈 것입니다.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타인의 생각의 결과물에 불과한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타인의 견해가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를 삼키지 못하게 하세요. 또 가장 중요한 것은 가슴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의 가슴과 영감은 여러분이 되고자 하는 바를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이죠.
제가 어렸을 때 '지구백과'라고 하는 놀라운 책이 있었는데 저희 세대에게는 바이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시적 감각으로 살아있는 책이었지요.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로 제작된 책이었습니다. Google이 등장하기 35년 전 책으로 된 Google같은 거였죠.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최종판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겁 없는 사람이나 히치하이킹 할 수 있는 풍경입니다.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습니다.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 제 자신에게도 항상 그러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시작을 위해 졸업을 하는 여러분에게 동일한 바람을 가집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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