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Story - 해당되는 글 27건



체 게바라는 1928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의사시험에 합격하였고 의사가 되어서 편안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일생을 바꾼 사건을 경험한 후로 안락한 삶을 버리고 혁명가의 길에 뛰어들게 됩니다.

대학생시절 체는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이것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로 각색하기도 했죠).

여행 도중에 미국과 유럽의 농장주들에게 박해받고 있는 남미의 가난한 농민들과 빈민들을 목격하게 되었는데요. 이후 체는 빈부격차, 계급문제 등에 대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열심히 공부하였고 결국 자본주의와 타협할 수 없는 공산주의 혁명가가 됩니다.

이후 28살에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게 되었고 둘은 힘을 합쳐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켜 당시 자본주의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던 독재정부를 무너뜨리고 쿠바혁명을 달성합니다.

혁명 후에 쿠바재무국장이 되었는데요. 체는 본래 보헤미안적이고 낭만적인 성격의 소유자이였기에 한곳에 안주하는 생활에 실증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37세일때 공산주의의 모토인 세계혁명을 실천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앙골라에 건너가 그곳에서 게릴라전을 펼쳤지만 실패하고 39세때 다시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에 참여하였다가 포로로 잡혀 총살됩니다.

.......................

체 게바라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립니다. '세계혁명' 이라는 대업을 이루기위해 직접 실천하였던 위대한 영웅적인 면모와, 한편으로는 잔인하고 무능력한데다가 과대망상증과 소영웅주의에 빠진 몽상가라는 두 평가가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땐 두개 다 맞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체 게바라가 쿠바재무국장이었던 시절 쿠바의 경제는 나락으로만 떨어졌고 게릴라전을 펼쳤을 때도 그의 작전능력과 정보수집능력은 매우 형편없었습니다. 볼리비아에서는 그의 오판으로 인해 부하들 뿐만아니라 그자신도 총살되었습니다.  또한 체는 매우 잔인했는데요. 혁명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회의적인 생각을 가진 부하들은 자신이 직접 그자리에서 총으로 쏴죽이기도 하고 쿠바혁명에 반대하던 시민들은 처형시켜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체가 확실히 뜨거운 피를 가진 세기의 풍운아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겠죠. 쿠바 장관이었던 시절에는 몸소 농민들과 함께 농사일을 하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등 단 한시도 나태해지지 않고 노동을 몸소 실천하였습니다. 또한 안주하지 않고 전세계를 누비며 대업을 이루기위해 발로 뛰어다닌 그 정열은 체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에는 불가능한 이상을 품자"

체의 이 명언에 그에게 배울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나이에 의사로서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것을 스스로 마다하고 혁명의 길에 뛰어들어 39세에 요절할 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삶을 살아온, 불꽃같이 타오르는 혁명가.  자신이 한번 품은 이상과 대의에 목숨까지 내걸고 직접 뛰어들 수 있었던 그 패기와 정열. 자신의 게릴라동지들과 함께 정글이나 오지를 전전하며 동고동락했던 그 우애.

보통의 사람들은 부귀공명을 좇고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바리죠. 보통의 사람들은 젊었을 적 자신이 품었던 이상과 정열을 잃은 채 숨막히는 사회에 동화되어 무미건조하게 살아가죠. 보통의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거나 무모한 것에는 현실적인 판단이 앞서 그것을 마다하려고 하죠.

체의 불꽃과도 같은 인생은 세상에 파묻혀사는 우리가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를 다시끔 되돌아보게 해줍니다.

................................

1. 피델 카스트로 역시 이전 독재자 바티스타에 비하면 나은 편이고 교육과 의료에 힘써 쿠바 출신 석사, 박사학위자가 부쩍 늘어났고 전체 시민의 평균수명은 78.2세까지 올라갔지만 어쨌든 독재자라는 비난은 면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전세계의 사회당, 공산당이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사회주의 내지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반면에 쿠바는 아직 정치적 자유가 별로 확보되지 못했지요. 쿠바의 인권실태는 1970~80년대의 한국과 비슷한 정도라고 합니다(엠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

그런 반면에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처럼 오명을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마침 체 게바라가 살해된 직후인 1968년 전유럽과 미국에서 반전평화운동, 신문화운동 등등 학생과 지식인층, 젊은 직장인층까지 참여한 거대한 규모의 시위가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그들 시위대의 우상으로 방금 죽은 체 게바라가 등장합니다. 이때부터 위로 눈 치켜뜨는 체 게바라 초상화가 전세계인들에게 알려졌지요.

또한 1980~1990년대 남미의 정치적 민주화 과정에서 극우 독재자들이 저지른 만행들이 널리 알려졌는데(이게 작은 규모의 만행이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니카라과의 소모사만 30만명, 과테말라 우익군사정권은 20만여명을 살해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남미인들에게 또한번 체 게바라가 부각되었지요.

2. 체 게바라가 유난히 존경을 받는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1) 공산주의자 치고는 인명을 존중하는 편이었다.

체 게바라는 군율에 대단히 엄격해 주민 물건 빼앗아온 소년병을 총살해버린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바티스타군 포로들에게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었지요. 본인이 의사라서 치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게릴라로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한 예로, 훗날 체의 최측근이 되어 볼리비아행에도 동참한  다리엘 알라르콘 라미네스는 바티스타군에 정보를 제공하던 사람이었죠. 대숙청, 문화대혁명, 킬링필드나 봐오던 사람들에게 체 게바라는 호치민과 더불어 신선한 충격이었을 겁니다.

2)소련으로부터의 자주성을 주장했다.

대체로 미국이든 소련이든 강대국에 사대하는 위성국의 지도자들이 더욱 폭력적이고 잔인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약한 지지기반을 보충할 수 있으니까요. 스탈린이 내세운 대위 출신 김일성은 자신보다 좌파활동경력에 있어 훨씬 공이 많은 남로당파, 국내파, 연안파, 소련파 공산주의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런 이치를 간파한 모양인듯, 체 게바라는 쿠바 공산당원들에게 항상 소련으로부터의 자주성을 강조했습니다. 민중의 지지와 지식층(여론형성층)의 호의적인 평가를 얻기 위해서는 자주적이어야 한다고.. 지금 북한이 주체사상 주체사상 하지만 그것은 과거 소련의 간섭 하에서 정착된 숙청체제의 연장에 다름아니지요.

3)서구인을 건드리지 않았다

체 게바라가 서구인들로부터 호감을 산 이유에는 그가 외국인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도 주효하게 작용합니다. 오사마 빈 라덴,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어떤 저항세력보다도 동정을 살수 없는 것은 그가 서구 민간인을 죽였기 때문이지요. 체 게바라는 위해를 가하기는 커녕 미국의 언론인들의 취재요청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를 서구인, 서구사회에 개방적인 인물로 보이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첨언하면 공산주의라고 하여 다 나쁘다고만 볼수는 없습니다. 서유럽과 일본공산당은 이미 냉전종식 수십년전에 의회민주주의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좌파정책을 추구하기로 방침을 정했지요. 무엇이 어찌되었든 중요한 것은 정치적, 시민적 자유의 인정 여부입니다.

쿠바와 베트남의 공산주의는 비록 이러한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으니 전망이 밝을수는 없었지만 외세 간섭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는 것, 그리고 이전의 체제보다 낫다는 신념을 시민들에게 제공한 것은 사실이죠.

3. 체 게바라의 죽음은 볼리비아 정부보다 미국 정부가 더욱 강력하게 재촉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볼리비아의 대통령이던 바리엔토스는 체 게바라를 죽이면 남미인들이 들끓고 일어날까봐 처형에는 반대했지만, 미국에서는 합참의장 렘니처 장군이 체 게바라 처형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분위기가 그쪽으로 흘러 바리엔토스에게 체 게바라 처형압력을 가하게 됩니다.

출처 : 장 코르미에 저, <체 게바라 평전>, 실천문학사, 2006

'Talk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 게바라  (0) 2008/06/04
스티브 잡스 연설  (0) 2008/05/07
함께 먹으면 해로운 음식  (0) 2007/06/07
온 세상이 더러워질까 봐  (0) 2007/06/07
남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0) 2007/06/07
아버지의 지갑  (0) 2007/05/30
      Tag - ☆10, 혁명가
      Talk/Story  |  2008/06/04 17:57
name ::   password :: blog :: secret
등록






감사합니다.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 인생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저 세 가지 이야기일 뿐입니다.


먼저 인생의 점들을 잇는 것(connecting the dots)에 대해서입니다.

전 리드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 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하다가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위해 대학을 나온 양부모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었죠. 하지만 제가 태어난 순간에 변호사 부부는 마지막 순간에 여자 아이를 입양하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대기자 명단에 있던 제 양부모들은 한밤중에 이런 전화를 받게 됩니다.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입양하시겠습니까?" 양부모님은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죠."

그런데 양어머니는 대졸도 아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안 나와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몇 달 후 양부모님이 저를 대학까지 가르치겠다고 약속한 후에야 친어머니는 입양에 동의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순진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퍼드대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6개월 후 대학생활은 그만한 가치가 없어보였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또 대학교육이 그것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알 수 없었습니다.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을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잘 될 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 돌아 보았을 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 후엔 재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보다 더 흥미 있어 보이는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5센트짜리 콜라병을 팔아 끼니를 때우기도 했습니다. 일요일이면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을 걸어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순전히 호기심과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훗날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드리죠. 당시 리드 칼리지는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와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 손으로 아름답게 그린 서체 예술이었습니다. 정규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으므로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 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글자체의 요소인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아름답고, 유서 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어서 전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 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PC에는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가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가 미래와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그 무엇이든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현재가 미래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여러분의 가슴을 따라 살아갈 자신감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험한 길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모든 차이를 빚어냅니다.


두 번 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제가 차고에서 애플사를 세운 것은 제가 20세 때 일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 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작품, 매킨토시를 출시했고 전 30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어떻게 자기 회사에서 해고당할 수 있냐고요?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1년 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말이죠.

저는 인생의 초점을 잃어버렸고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배 벤처 세대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 같았습니다. 제게 넘겨진 배턴을 놓쳐버린 것 같았습니다.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창업자)를 만나 이렇게까지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실패의 본보기였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습니다.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성공이란 중압감 대신 찾아온 초심자의 가벼움, 불확실함.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후 5년 동안 저는 'NeXT'와 'Pixar'를 세우고 지금은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Pixar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NeXT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NeXT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입에 쓴 약이었지만 제게는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인생이 배신하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저를 계속 움직이게 했던 힘은 제 일을 사랑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연인이 여러분에게 의미하는 것처럼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은 여러분의 삶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이고 여러분이 위대하다고 믿는 그 일을 하는 것만이 진정한 만족을 줄 것입니다. 위업을 달성하는 것은 당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 입니다. 그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세요. 현실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전심을 다해서 찾아내면 그 때는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위대한 관계들이 그러한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더 나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추구하십시오. 안주하지 마십시오.


세 번 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매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위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 글에 감명 받은 저는 그 이후로 지난 33년 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며칠 연속 'No'라는 답을 얻을 때마다 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곧 죽는다'는 생각은 인생의 결단을 내릴 때마다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의 두려움은 '죽음' 앞에선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죽을 몸입니다. 그러므로 가슴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저는 1년 전쯤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악성종양이 보였습니다. 그때까진 췌장이 뭔지도 몰랐죠. 의사들은 거의 치료할 수 없는 종류의 암이라고 했습니다. 또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 밖에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 동안 해줄 것을 단 몇 달 안에 다 해내야 된다는 말이었고 가족들이 임종할 때 쉬워지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조직검사를 받았는데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 췌장에서 암세포를 채취하는 조직검사였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하면서 갑자기 울먹거리기 시작했답니다.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희귀한 종류의 췌장암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감사하게도 지금은 완치되었습니다.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 십 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지 않길 바랍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죽어서까지 가고 싶어 하진 않죠.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죽음은 삶을 대신하여 변화를 만듭니다. 죽음은 구세대를 대신하도록 신세대에게 길을 터줍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곧 신세대입니다. 그러나 머지않아서 여러분도 구세대가 되어 사라져 갈 것입니다.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타인의 생각의 결과물에 불과한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타인의 견해가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를 삼키지 못하게 하세요. 또 가장 중요한 것은 가슴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의 가슴과 영감은 여러분이 되고자 하는 바를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이죠.


제가 어렸을 때 '지구백과'라고 하는 놀라운 책이 있었는데 저희 세대에게는 바이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시적 감각으로 살아있는 책이었지요.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로 제작된 책이었습니다. Google이 등장하기 35년 전 책으로 된 Google같은 거였죠.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최종판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겁 없는 사람이나 히치하이킹 할 수 있는 풍경입니다.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습니다.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 제 자신에게도 항상 그러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시작을 위해 졸업을 하는 여러분에게 동일한 바람을 가집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대단히 감사합니다.

'Talk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 게바라  (0) 2008/06/04
스티브 잡스 연설  (0) 2008/05/07
함께 먹으면 해로운 음식  (0) 2007/06/07
온 세상이 더러워질까 봐  (0) 2007/06/07
남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0) 2007/06/07
아버지의 지갑  (0) 2007/05/30
      Tag - ☆10
      Talk/Story  |  2008/05/07 13:00
name ::   password :: blog :: secret
등록






* 라면과 콜라
라면은 화학적으로 칼슘과 결합을 잘하는
성질이 있어 칼슘부족을 일으키기 쉽다.
그리고 콜라도 칼슘과 잘 결합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둘을 같이 먹으면
칼슘결핍을 가지고 온다.

* 우유와 설탕
우유에 설탕을 넣으면 단맛 때문에 마시기는
쉽지만 비타민B1의 손실이 커진다.

* 오이와 무
오이에는 비타민 C가 존재하지만
칼질을 하면 아르코르비나제라는 효소가 나오고
이 효소는 비타민 C를 파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무와 섞으면 무의 비타민 C는 파괴될 것이다.

* 초콜릿과 우유
우유의 유지방과 초콜릿의 유지방이 결합하면
성인병을 유발시킨다.

* 땅콩과 치즈
치즈와 땅콩에는 지방이 많이 들어있어
성인병을 유발하기 쉽고 인산칼슘이 만들어져
흡수되지 않고 배설되어 버린다.


- 복지부 직원 전용 게시판에서 -

'Talk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 게바라  (0) 2008/06/04
스티브 잡스 연설  (0) 2008/05/07
함께 먹으면 해로운 음식  (0) 2007/06/07
온 세상이 더러워질까 봐  (0) 2007/06/07
남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0) 2007/06/07
아버지의 지갑  (0) 2007/05/30
      Talk/Story  |  2007/06/07 09:12
name ::   password :: blog :: secret
등록






작은딸이 7살일 때 이야기입니다.
가까운 피아노 학원을 다니다가
이사를 하는 바람에 학원을 옮겨야 하는데
꼭 전에 다니던 학원을 다니고 싶어 해서
아이 걸음으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학원에 걸어 다닐 때입니다.

어느 날 오후 현관문 앞에서
큰 소리로 엄마를 부릅니다.
"그래! 의진이 왔니? 문 열렸으니 들어와."
그러자 의진이가 자랑스럽게 큰소리로 외칩니다.
"엄마! 제 손에 든 것이 많아서 문을 열 수 없어요!"

무슨 소린가 하여 문을 열었더니 딸아이가
양손 가득 쓰레기를 잔뜩 들고 서있었습니다.
어찌 된 거냐고 물으니 언니오빠들이
학원 근처 분식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고 갔다면서
아이스크림 껍데기, 떡볶이 컵 등을 주워서
양손 가득 들고 학교 앞에서부터
걸어서 집으로 가져 온 것입니다.

아파트 올라오는 언덕에서 쓰레기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써서 들고 온 티가 납니다!
얼굴이 상기된 채...
손등엔 떡볶이 컵에서 흘러내린 국물이 주르륵...

"온 세상이 더러워질까 봐 제가 다 들고 왔어요!"

순간 엉뚱하다 생각했지만
칭찬을 많이 해 주었습니다.
의진이의 그런 예쁜 마음이
온 세상을 깨끗하게 한다고...

'Talk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티브 잡스 연설  (0) 2008/05/07
함께 먹으면 해로운 음식  (0) 2007/06/07
온 세상이 더러워질까 봐  (0) 2007/06/07
남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0) 2007/06/07
아버지의 지갑  (0) 2007/05/30
아내와 남편  (0) 2007/05/09
      Tag - 순수, 순수함, 어린아이
      Talk/Story  |  2007/06/07 09:07
name ::   password :: blog :: secret
등록






왕이 위독한 병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어떤 의사도 감히 왕의
병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나섰다가 병을 고치지 못하면
해를 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한 의사가 왕의 병을 고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 의사가 왕에게 바칠 약을 만드는 사이
왕은 의사의 적들로부터 그를 모함하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의사가 적에게 매수되어
왕을 죽이려 하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침내 의사가 약을 다 만들어 왕에게 바치자.
왕은 자신이 받은 편지를 내밀었습니다.
왕은 자신이 받은 편지를 읽는 동안
아무 의심 없이 의사가 만든 약을
모두 마셨습니다.

편지를 다 읽고 겁에 질려 있는 의사에게
왕은 말했습니다.
"나는 자네를 믿소."
얼마 뒤 왕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선인들은 의심하기 보다는
차라리 속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속지 않기 위해 뭐든지
의심하며 살아갑니다.
한두 번 속지 않으려고 늘 의심하는
불행한 삶을 택하는 거지요.

그러나 자기 목숨을 걸고 남을 믿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당신은 주변 사람들을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까?


- 막시무스 -

'Talk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께 먹으면 해로운 음식  (0) 2007/06/07
온 세상이 더러워질까 봐  (0) 2007/06/07
남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0) 2007/06/07
아버지의 지갑  (0) 2007/05/30
아내와 남편  (0) 2007/05/09
친정엄마와 네잎클로버  (0) 2007/05/08
      Tag - 리더십, 믿음, 신뢰
      Talk/Story  |  2007/06/07 09:05
name ::   password :: blog :: secret
등록






몇 달 전에 아버지의 지갑을 보았습니다.
싸구려 지갑... 너무 오래되어서 낡은,
흙이 묻어 있는 지갑이었습니다.

늘 아버지의 물건들은 낡고 닳았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형편이 좋지 않아
학교 등록금을 반밖에 내지 못한 저는
대학교에서 제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무능력함에 너무 화가 나고
학교 측의 대응에 분이 올라와서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무능력하고 바보 같아서
사람들에게 속기만 하고, 다른 아버지들처럼
학교 등록금 하나 못 내주냐고.

감정표현에 서툰 분이시라
그냥 묵묵히 제 화를 다 받아주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께서 무능한 자식의 학교등록금을
벌기 위해 중국으로 일을 하러 가십니다.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이...

며칠 전에 다시 아버지의 지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아빠 지갑은 왜 이렇게 낡고 지저분해?”
아버지의 대답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거야 너희 오빠가 쓰다가 버리려는 지갑을
내가 몇 년 째 쓰고 있으니깐 그렇지...”

여태 비싼 지갑 하나, 값나가는
구두 한 켤레 사보신 적 없는 아버지.
백화점이라는 곳에 가서 물건을 살 생각조차
못하신 아버지의 지갑을 보니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아버지의 생신에도, 어버이날에도
아무 것도 해드리지 못한 저는
다음날, 아버지께 좋은 지갑을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도 지갑에 넣었습니다.
꼭 건강하게 돌아오시라고,
죄송하다고...

'Talk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온 세상이 더러워질까 봐  (0) 2007/06/07
남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0) 2007/06/07
아버지의 지갑  (0) 2007/05/30
아내와 남편  (0) 2007/05/09
친정엄마와 네잎클로버  (0) 2007/05/08
어느 소방관의 일기  (0) 2007/05/04
      Talk/Story  |  2007/05/30 12:22
name ::   password :: blog :: secret
등록






아내가 설거지를 하면서 말했다.

"애기 좀 봐요!"
그래서 난 애기를 봤다.
뚫어져라 한 시간 동안 쳐다보고만 있다가
아내에게 행주로 눈을 얻어맞았다.

아내가 청소를 하며 말했다
"세탁기 좀 돌려줘요."
그래서 난 낑낑대며
세탁기를 들고 빙빙 돌렸다.
힘들게 돌리고 있다가 아내가 던진
바가지에 뒤통수를 맞았다.

아내가 빨래를 널며 말했다.
"방 좀 훔쳐요."
그래서 난 용기 있게 말했다.
"훔치는 건 나쁜 거야."
그랬더니 아내가 빨래바구니를 던졌는데
그걸 피하다가 걸레를 밟고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내가 출근하는 내게 말했다.
"문 닫고 가요."
그래서 문을 닫았다.
나갈 수가 없었다.
한 동안 고민하며 서 있는데
화장실에 가려던 아내가 날 보더니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내쫓았다.

여러분! 저 착한 남편 맞죠?

'Talk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0) 2007/06/07
아버지의 지갑  (0) 2007/05/30
아내와 남편  (0) 2007/05/09
친정엄마와 네잎클로버  (0) 2007/05/08
어느 소방관의 일기  (0) 2007/05/04
사람이 아름답게 될 때  (0) 2007/05/03
      Tag - 착한 남편
      Talk/Story  |  2007/05/09 09:32
name ::   password :: blog :: secret
등록






얼마전 연휴를 앞두고 일흔을 훌쩍 넘긴
엄마가 지명이 가까운 큰딸에게 전화를 했다.

이번 연휴에도 시댁일로 친정엔
발걸음하기가 어렵다는 걸 아는 엄마가
딸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새삼스레 주소를 확인했지만
무심한 딸은 성의없이 대답을 하곤
별생각 없이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연휴 전날, 퇴근길의 남편이
편지 한 장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파주 어머님이 편지를 보내셨네. 어서 읽어 봐."

남편의 재촉 속에 받아 든 편지는
또박또박 글자 하나마다 힘주어 쓴,
눈에 익은 엄마의 글씨가 분명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편지를 든
내손이 파르르 떨렸다.
조심스레 봉투를 열자 비상하는
학의 그림이 담긴 연하장이 나왔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연하장을 펼쳤다.

제일 윗부분에 사위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글이 보이고 아래는 외손자의
초등학교 입학을 축하하는 글과 함께
임진강변 어느 곳에서 찾아냈을
네잎클로버 하나를 붙여 놓았다.

사위와 딸에 대한 애틋한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음이,
그렁대는 눈물 속에서도 선명히 보였다.

어느새 내 눈물 하나가 편지 위로 툭 떨어지고,
애써 무심한 척 곁눈질로 장모님의 글을
읽어가던 남편의 코끝도 빨개졌다.

"참... 우리 장모님은 사위를 부끄럽게 하시네.
여보, 걱정하지마! 큰사위 절대로
장모님 실망 시키지 않을 테니.
야, 우용아 네가 큰 소리로 외할머니 편지 읽어라.
네 엄마 운다."

남편의 말에 아이가 더듬더듬,
그러나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가는
친정엄마의 짧은 편지는
남편과 내게, 그리고 어린 아이에게까지
올곧은 부모 노릇이 어떤 것인지를
조분조분 따스한 마음으로 가르쳐 주었다.

'Talk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의 지갑  (0) 2007/05/30
아내와 남편  (0) 2007/05/09
친정엄마와 네잎클로버  (0) 2007/05/08
어느 소방관의 일기  (0) 2007/05/04
사람이 아름답게 될 때  (0) 2007/05/03
사물을 보는 눈  (0) 2007/05/03
      Tag - 부모님, 어머니의 사랑
      Talk/Story  |  2007/05/08 16:22
name ::   password :: blog :: secret
등록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저에게는 언제나 안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인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시원한 물가에 나를 눕혀 주오
내 아픈 몸이 쉬도록 눕혀 주오
내 형제에게 이 말을 전해 주오
화재는 완전히 진압되었다고

신이시여, 출동이 걸렸을 때,
사이렌이 울리고, 소방차가 출동할 때,
연기는 진하고 공기는 희박할 때,
고귀한 생명의 생사를 알 수 없을 때,
내가 준비되게 하소서.

신이여!
열심히 훈련했고잘 배웠지만
나는 단지 인간사슬의 한 부분입니다.
지옥 같은 불 속으로 전진할지라도 신이여,
나는 여전히 두렵고, 비가 오기를 기도합니다.
내 형제가 추락하거든 내가 곁에 있게 하소서.
화염이 원하는 것을 내가 갖게 하시고
그에게 목소리를 주시어.
신이시여!
내가 듣게 하소서.

저희 업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저희 모든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지키게 하여 주소서

신이시여!
내 차례가 되었을 때를 준비하게 하시고
불평하지 않고 강하게 하소서
내가 들어가서 어린아이를 구하게 하소서
나를 일찍 거두어 가시더라도 헛되지는 않게 하소서
그리고 내가 그의 내민 손을 잡게 하소서

'Talk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와 남편  (0) 2007/05/09
친정엄마와 네잎클로버  (0) 2007/05/08
어느 소방관의 일기  (0) 2007/05/04
사람이 아름답게 될 때  (0) 2007/05/03
사물을 보는 눈  (0) 2007/05/03
네 종류의 친구  (0) 2007/05/03
      Tag - 소방관
      Talk/Story  |  2007/05/04 09:46
name ::   password :: blog :: secret
등록






한 엄마에게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얼마 전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죽은 남편이 가해자로 몰려 그들은
맨몸으로 길거리로 쫓겨났습니다.

간신히 헛간을 빌려 가마니를 깔고
변변찮은 이불과 옷가지 몇 개만으로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아침 6시에 집을 나가 빌딩 청소를 하고,
낮에는 학교 급식을 돕고
밤에는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며 살았고
집안일은 초등학교 3학년 맏이가 맡았습니다.
참으로 고된 삶이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는 냄비에 콩을 잔뜩 안쳐 놓고
집을 나서며 메모를 썼습니다.

영호야. 냄비에 콩을 안쳐 놓았으니
이것을 조려 저녁 반찬으로 해라.
콩이 물러지면 간장을 넣어 간을 맞추면 된다.
- 엄마가 -

고된 삶에 지칠 대로 지친 엄마는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에
수면제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두 아이가 가마니 위에서
이불을 덮고 나란히 잠들었는데 맏이의 머리맡에
"엄마에게!" 라고 쓴 편지가 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보는 순간 엄마는 수면제를 버리고
맏이가 만든 콩자반을 울며 울며 먹었습니다.
눈물범벅이 된 채...

"엄마! 오늘 엄마 말대로 콩이 물러졌을 때
간장을 부었는데 동생이 짜서 못 먹겠다고 투정해서
한 대 때렸더니 울다 잠들었어요.
열심히 콩을 삶았는데... 엄마! 용서해 주세요.
내일은 저를 꼭 깨워 콩 삶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엄마! 피곤하지요? 꼭 건강하세요. 사랑해요.
엄마 고생하는 것 저희도 다 알아요. 먼저 잘게요."

'Talk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정엄마와 네잎클로버  (0) 2007/05/08
어느 소방관의 일기  (0) 2007/05/04
사람이 아름답게 될 때  (0) 2007/05/03
사물을 보는 눈  (0) 2007/05/03
네 종류의 친구  (0) 2007/05/03
그래도 사는 길은 있습니다  (0) 2007/05/03
      Tag - 가족 이야기
      Talk/Story  |  2007/05/03 09:42
name ::   password :: blog :: secret
등록






- 선덕여왕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신라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의 일이다.
            당태종이 진평왕에게 모란꽃이 그려진
            그림과 꽃씨를 선물로 보내왔다.
            당시만 해도 모란꽃은 알려지지 않은 터라,
            왕은 공주에게 보여주었다.


                                                            그림 : 김판국 화백


꽃에 나비가 날아 들지 않았다면 그 꽃은 향기가 없다고 하네요.
꽃이 향기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림을 그린 화가가 벌레를 싫어 할 수 도 있지요^^ ㅎㅎㅎ  

- 사물을 꼼꼼히 살피고 생각을 깊게 하면 지혜가 생깁니다. -

'Talk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소방관의 일기  (0) 2007/05/04
사람이 아름답게 될 때  (0) 2007/05/03
사물을 보는 눈  (0) 2007/05/03
네 종류의 친구  (0) 2007/05/03
그래도 사는 길은 있습니다  (0) 2007/05/03
줌마인의 보이사비  (0) 2007/05/03
      Tag - 사물을 보는 눈, 지혜
      Talk/Story  |  2007/05/03 09:28
name ::   password :: blog :: secret
등록






친구에는 4가지 부류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꽃과 같은 친구.
꽃이 피어서 예쁠 때는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꽃이 지고 나면
돌아보는 이 하나 없듯
자기 좋을 때만 찾아오는 친구는
바로 꽃과 같은 친구입니다.

둘째 저울과 같은 친구.
저울은 무게에 따라
이쪽으로 또는 저쪽으로 기웁니다.
그와 같이 자신에게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 이익이 큰 쪽으로만 움직이는 친구가
바로 저울과 같은 친구입니다.

셋째 산과 같은 친구.
산이란 온갖 새와 짐승의 안식처이며
멀리 보거나 가까이 가거나
늘 그 자리에서 반겨줍니다.
그처럼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마음 든든한 친구가
바로 산과 같은 친구입니다.

넷째 땅과 같은 친구.
땅은 뭇 생명의 싹을 틔워주고
곡식을 길러내며 누구에게도 조건 없이
기쁜 마음으로 은혜를 베풀어 줍니다.
한결 같은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친구가
바로 땅과 같은 친구입니다.

'Talk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이 아름답게 될 때  (0) 2007/05/03
사물을 보는 눈  (0) 2007/05/03
네 종류의 친구  (0) 2007/05/03
그래도 사는 길은 있습니다  (0) 2007/05/03
줌마인의 보이사비  (0) 2007/05/03
꼽추 엄마의 눈물  (0) 2007/05/03
      Tag - 친구
      Talk/Story  |  2007/05/03 09:25
name ::   password :: blog :: secret
등록






한 실력 있는 회사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다 54세에
IMF를 맞아 해고되었습니다.

그때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야 속이 후련하다.
내가 지금까지 오랫동안 회사에 매여 가족들과
좋은 시간도 못 가졌고 취미생활도 못했는데
이젠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도 많아지고
취미생활도 할 수 있어 잘 됐다."

가족들은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그는 처음엔 여행도 가고,
가족과 함께 외식도 했습니다.

그러나 3개월쯤 후부터 완전히 말을 잃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3개월 내내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그때 쉽게 죽지 못한 이유는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죽을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그의 54회 생일에 가족들은 아빠에게 힘을
주자고 했습니다.

그날 네 식구가 조용한 찻집에 가서
아내가 먼저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 54회 생일에 우리가
특별 선물을 준비했어요."

그리고 봉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그 종이에는 그 동안 남편에게 고마웠던 일,
남편이 자랑스러웠던 일 54개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다 읽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었어요."

곧 이어 대학생 딸이 아빠에게 고마웠던
54가지 일을 다 읽고 말했습니다.

"저는 저를 이만큼 키워주신
아빠가 너무 자랑스러워요."

아빠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계속해서 고등학생 아들이 아빠에게 고마웠던
54가지 일을 다 읽고 말했습니다.

"아빠는 우리 가정의 보석과 같은 분이예요."

결국 아빠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그는 일어섰습니다.
자존심이 무너지며 다 무너졌는데 자기에게는
아직 소중한 가족이 있음을 깨닫고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후 그는 다시 든든한 남편과 아빠의 모습을
되찾고 작은 행복의 조건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Talk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물을 보는 눈  (0) 2007/05/03
네 종류의 친구  (0) 2007/05/03
그래도 사는 길은 있습니다  (0) 2007/05/03
줌마인의 보이사비  (0) 2007/05/03
꼽추 엄마의 눈물  (0) 2007/05/03
어른의 가면  (0) 2007/05/03
      Tag - 아빠, 아빠의 눈물
      Talk/Story  |  2007/05/03 09:21
name ::   password :: blog :: secret
등록






지난 4월 23일,
사람들은 부활절을 맞아 달걀을 손에 들고 갔다.
그러나 이 날은 줌마인들의
고유명절인 '보이사비'날 이기도 했다

줌마인!
우리에게는 생소한 단어인 줌마인은
방글라데시 동남쪽 치타공 산악지대(CHT)에
사는 소수민족의 이름이다.
이 지역에는 13개 민족으로 구성된
약 60만 명의 줌마인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고유의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벵갈리 인들은 줌마인들과 언어, 종교 등
모든 면에서 뚜렷한 문화적 차이를 보이는데
방글라데시 정부는 줌마인들을 향해
벵갈리인으로 동화될 것을 강요하며
이들의 자치권 요구를 묵살하고 있는 실정이다.

줌마인들의 고유명절인 '보이사비'날은
가족, 이웃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먹고
어르신들의 목욕을 도와드리며
불우한 이웃들에게 온정을 나누고
강가에서 꽃과 초를 띄우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에 거주하는 난민 신분의
줌마인들은 그날 행사를 대신해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 현수막에는 이런 글귀가 써 있었다.

우리는 한국처럼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민족입니다.
우리가 50년전 한국의 독립에 관심을 가졌듯
한국도 우리의 독립을 위해 관심만 부탁드리겠습니다.

'Talk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 종류의 친구  (0) 2007/05/03
그래도 사는 길은 있습니다  (0) 2007/05/03
줌마인의 보이사비  (0) 2007/05/03
꼽추 엄마의 눈물  (0) 2007/05/03
어른의 가면  (0) 2007/05/03
올케언니의 결혼반지  (0) 2007/04/30
      Tag - 줌마인
      Talk/Story  |  2007/05/03 09:09
name ::   password :: blog :: secret
등록






꼽추였던 여자와 꼽추였던 남자가
서로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결혼을 하였습니다.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 부부는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혹시나 부모의 유전을 받아
꼽추가 되지 않을는지...

그러나 부부의 걱정과는 달리
무척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꼽추 엄마는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살폈고,
착한 아이도 엄마를 잘 따르며...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이제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게 된 엄마는
다시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철이 들어감에 따라 엄마를 외면할까봐...
그런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엄마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한 번도 학교에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도시락을 놓고
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고민하기 시작했죠.

이 도시락을 학교로 갖다 주는 게 나은지...
도시락을 갖다 주면 아이가
무척 창피해 할 텐데...
그렇다고 갖다 주지 않으면
점심을 굶게 되는데...
이런저런 고민 끝에 학교에
살짝 갖다 주기로 했습니다.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이 볼까봐 몰래...
수업시간 중에 학교로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아이의 학교
순간 가슴이 뭉클해진 엄마였습니다.

교문을 들어서는데 웬 아이들이
잔뜩 모여 있었습니다.
어느 반의 체육시간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저쪽 나무 밑에서
엄마의 아이가 보였습니다.
아이의 반의 체육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엄마는 순간 당황했고
학교를 급히 빠져나가려했습니다.

아이가 볼까봐서...
친구들이 볼까봐서...

서러운 맘을 감추지 못하고
힘든 몸을 이끈 채 조심조심 뛰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아이가 엄마를 발견했습니다.
눈이 마주쳤습니다.
엄마는 놀라며 더욱 빠른 발걸음으로
교문을 빠져나가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쪽 나무 밑에서...
아이가 교문 쪽을 바라보며
손으로 입을 모으고 소리쳤습니다.

엄마!!!

꼽추 엄마의 눈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Talk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래도 사는 길은 있습니다  (0) 2007/05/03
줌마인의 보이사비  (0) 2007/05/03
꼽추 엄마의 눈물  (0) 2007/05/03
어른의 가면  (0) 2007/05/03
올케언니의 결혼반지  (0) 2007/04/30
300원 짜리 마스크  (0) 2007/04/17
      Tag - 순수함, 엄마의 눈물
      Talk/Story  |  2007/05/03 09:07
name ::   password :: blog :: secret
등록



Leader1102's Blog is powered by Da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