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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 직원들과 가끔 뜬금없는 주제에 대해 얘기해 보곤 한다. 어느 날은 모바일웹에서의 주도권은 누가 될 것 인가에 대해 얘기해 본적이 있다. 초기 스마트폰 시장의 이슈로 모바일웨의 활성화가 시작되던 때.. 많은 사람이 유선의 승자가 무선의 주도권을 쥐지 않을까? 라고 얘기 하곤 했다.

  나도 별 생각없이 네이버나 옥션이나 뭐.. 기존 유선의 강자들이 그대로 무선의 강자가 되지 않을까? 라고 얘기한적이 있었다. 과거형의 문장에서 느끼겠지만 지금은 그럴수도 아닐수도.. 아니.. 아니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실제 스마트폰을 사용해본 결과 사용빈도에 있어, 목적에 있어 기존 유선웹에서의 행태와 많은 차이가 있다. 접속시간은 몇 배가 증가 되었으며, 찾는 대상도 달라졌으니 말이다.
 
 
  조금 오래된 자료인데.. 뭐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위에 자료만 봐도 새로운 형태의 사용패턴이 눈에 띄는걸 볼 수 있다. 이삽십대의 사용자들의 경우 위치기반 서비스 활동이 눈에 띄게 많아 졌고 자료를 보면 정보취득 활동은 유선웹과 별반 특이하다고 생각되지 않을 수 있으나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소셜네트웍서비스를 통한 정보 접근이 상당하다는 걸 스마트폰 유저들은 많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정보접근에 있어 소셜네트웍 서비스를 통한 접근이 상당 부분 차지한다는 최근 통계도 여기저기서 인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은 매우 개인화된 기기이다. 그리고, 정말 말그대로 언제 어디서나.. 심지어 신문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화장실을 간다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때 드러난 트위터의 역활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과연 누가 모바일 혁명의 주인공이 될까? 한참 Web2.0이 이슈가 되고 Youtube가 조명을 받을때 타임지의 표지를 기억하는가? 거기에는 바로 You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은 바로 You 였다.

  일반적으로 혁명이 있을때 마다 새로운 문화가 창조되고 엄청난 변화가 주변 공기마져 변화 시켰다. 모바일 혁명도 마찬가지다. 기존과 같아서는 이 혁명에 동참하여 무언가 얻을 수 없다. 혁명의 속성을 잘 이해 하고 이 중심에 생겨나는 개인 행동 패턴과 소셜 문화를 재 해석, 재 창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 과연 주도권은 대체 누가 쥐게 될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말이다. 모바일 기반에서의 개인의 특성이 가장 적극적으로 잘 반영된, 소통과 그 안에서 교집합을 적절히 도출하여 이를 소셜네트웍 서비스 형태로 구현한 플래폼을 지닌 사업자가 주도권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소비자의 힘은 한층 더 강해 지지 않을까? 라는 소망을 품어 본다.

  참 재미있다. 나는 그대로인것 같은데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한다. 헌데 신기한건 어느 순간 난도 변해서 세상에 주는 색깔을 온몸에 품고 다닌다. 외로운듯 하면서도 외롭지 않은 세상이 온것 같다. 손만 내밀면 누군가에게 말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내 또 하나의 바램은.. 사람이 사람 냄새를 잊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술자리에서 건배한잔 하고 사진찍어 올리기에 바쁘고... 작은 스크린에 열광하는 이들이여... 당신이 지금 내 앞에.. 내가 지금 당신 앞에 있음을 더 소중히 여기자.. 오늘 넉두리는 여기서 끝~~~
      Talk/etc.  |  2010/06/2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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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in, The Burgher of Calais

칼레의 시민... 노블레스 오블리제...

1347년 도버해협 양쪽의 영구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때의 일입니다.. 1년 가까이 영국의 공격을 막던 프랑스의 북부도시 칼레는 원병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백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칼레시의 항복사절은 도시 전체가 불타고 모든 칼레의 시민이 도살되는 운명을 면하기 위해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였습니다. 완강한 태도를 보이던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항복의 조건을 내 놓았습니다.

"좋다. 칼레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동안의 어리석은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 이 도시에서 가장 명망이 높던 대표적인 시민 대표를 골라 목에 교수형에 사용될 밧줄을 목에 걸고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로 영국군 진영으로 가서 도시의 열쇠를 건넨 후 목을 매 처형 받아야 한다."

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6명이 그들을 대신해 죽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용감하게 6명이 선뜻 나섰습니다. 모두 그 도시의 핵심인물이며 절정의 삶을 누리던 부유한 귀족이었습니다. 칼레에서 가장 부자인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가장 먼저 자원했습니다.

"자 칼레의 시민들이여.. 나오라.. 용기를 가지고..."

그러자 시장이 나섰습니다. 상인이 나섰습니다. 그의 아들도 나섰습니다. 드디어 일곱 명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빠져도 되었지요. 제비를 뽑자는 말도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생피에르는 "내일 아침 장터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 제의 했고 이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들의 고통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여섯 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생피에르가 오지 앟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궁금했습니다. 모두 안 나와도 그는 나올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죽음을 자원한 사람들의 용기가 약해지지 않도록 칼레의 며예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이들 6명이 처형되려던 마지막 순간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왕비의 간청을 듣고 그 용감한 시민 6명을 살려주었습니다.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1895년 칼레시는 이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기 위해 생피에르에 조각상을 제작하기로 하고 조각가 로댕에게 의뢰했습니다. 이 작품이 바로 <칼레의 시민> 입니다. 1895년 6월 3일 기념상이 제막되었습니다.

높은 신분에 따르는 윤리적 의무를 나타내는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칼레의 영웅들은 이 말의 가치를 몸소 실천해 보였습니다...

로댕은 1884년 칼레시로부터 '칼레의 시민' 주문을 받게 됩니다. 작품을 완성해 칼레 시청 앞에 설치한 것이 1895년... 10년이 넘는 세월을, 작품 '칼레의 시민'에 바쳤습니다. 로댕은 10년의 세월을 바친 이 조각을 좌대 없이, 칼레의 시청 앞 땅바닥에 내려 놓습니다.

'칼레의 시민들이 고통으로 얼그러진 죽음의 그림자를 목에 두른 가장 위대한 6명의 영웅들과 함께 거리를 거닐 수 있도록...'

아마도 칼레의 시민들은 당연히 선조들의 영웅적인 모습을 기대했을 것 입니다. 하지만, 로댕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그러나 운명에 준종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로댕은 두려움과 맞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바로 영웅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고하 함이었습니다. 아마도, 칼레시의 시민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그 거리를 지나며 죽음을 향해 전진하던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들을 생각하며 시청앞을 오가고 있지나 않을까 합니다.

i think....

장관들의 기름값으로 30억의 세금이 나간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래서야 되냐고 지탄을 먼저합니다. 하지만, 4천만이 사는 이 나라를 지키는 장관들에게 그 이상을 해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내가 존경해야할 나라일을 하는 분들이 '칼레의 시민'과 같은 정신을 가진 분들인지는 묻고 싶습니다.

      Talk/etc.  |  2008/06/2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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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촛불시위와 관련해서 괜찮은 기사라 생각해서 몇줄 옮겨 봅니다.

[이균성]  촛불시위의 힘은 비폭력에서 나온다

2008년 6월. 이명박 정부는 출범 100일을 맞아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 촛불을 든 수십만 국민은 ‘이명박 아웃’을 외치며 전국 주요도로로 쏟아져 나왔다. 그 흐름은 거대한 강물처럼 도도하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권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거듭된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짙다. 국민이 보기에 이 정부는 1% 특권층만을 위해 귀도 눈도 먼 것처럼 느껴진다. 그 분노와 배신감이 촛불로 강을 이루어 도도하게 흘러내린 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이건 정부의 권력이 특권층에만 집중될 때 국민의 저항은 필연적이다. 우리 현대사만 보더라도 이승만 독재 정부에 반대한 ‘4.19 혁명’을 비롯해,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화항쟁’, 그리고 1987년 ‘6.10 항쟁’까지…. 독재 권력이 특권층을 위해 보통사람의 고혈을 요구할 때 우리 국민은 언제나 분연하게 떨쳐 일어나고는 하였다.

그런데 2008년 6월에 진행되고 있는 저항은 그 이전의 모든 투쟁과 비교되는 또렷한 차이가 있다. 그 어느 때 못지않게 강력한 저항이면서도 그 어느 때와도 달리 아주 평화적이라는 점이다. 피를 부르지 않는 저항. 그래서 2008년 6월의 저항은 그 어느 투쟁 못지않게 힘이 있어 보인다.

1987년 ‘6.10 항쟁’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독재 권력에 저항하는 주체 세력들이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을 신앙처럼 여긴 데에서도 드러난다. 그때까지는 저항하는 쪽이나 제압하는 쪽이나 결코 뒤로 물러설 수 없다는 사생결단의 자세였고 그래서 폭력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2008년 6월 저항은 그래서 사회학자나 정치학자들에 새로운 연구를 요구할 정도다. 우리 사회에 과거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방식의 저항운동이 바야흐로 만개한 것이다. 저항의 방식이 바뀌게 된 원인을 굳이 찾자면 많을 것이다. 대표적인 분석이 2002년 월드컵 때 보여줬던 대규모 축제문화와 저항할 줄 아는 시민의식이 창조적으로 결합됐다는 설명이다. 충분히 일리 있는 설명이고, 또 다른 해석도 사회학자를 중심으로 연구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원인보다 중요한 건 비폭력 저항이 가진 힘의 실체를 느끼는 일이다.

독재 권력에 대한 과거의 폭력적 항쟁과 투쟁은 싸우는 자, 즉 전사를 만들어냈지만, 2008년 6월의 저항은 뜨거운 가슴으로 자유를 향유할 줄 아는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고 있다. 6월7일 10만 다중이 모인 시청앞 촛불집회 현장에서 자유발언자로 올라온 사람은 고려대학교 4학년의 한 여학생이었다. 이 학생은 전날 한승수 총리가 대학생과 가진 대담에서 한 총리를 오싹하게 만들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도 할 만큼 당찼다. 그 학생은 이날 자유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이 잘한 게 하나 있다. 길거리에서 민주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점이다.” 촛불을 든 1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박수로 환호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2008년 6월에 진행되고 있는 권력에 대한 비폭력 저항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위험한 폭력 요소를 처음부터 배제함으로써, 학생이건, 어린 아이를 둔 주부건, 넥타이부대건, 어르신이건 모두를 저항의 현장으로 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저항의 현장에서 폭력의 힘을 빼는 순간 다중의 비폭력의 거대한 힘이 마치 분수처럼 뿜어져 올라온 것이다.

특히 비폭력 저항은 권력의 옹졸한 협박을 오히려 웃음거리로 만들어 엄중한 저항의 현장을 축제의 현장으로 바꾸어버리기도 한다. 권력이 끝없이 ‘배후론’을 주장하며 ‘불순분자’를 색출하겠다고 협박할 때 시민이 먼저 서로 경찰차에 오르는 게 그러한 사례이다. 이런 풍자적 저항은 완전하게 개방된 토론 광장인 인터넷을 통한 학습의 효과이기도 할 것이다.

이날 현장에 참석한 4학년짜리 아들은 아주 많은 것이 궁금한 눈치였다. 무엇보다 '나라 최고 어른'인 대통령에 대한 상스러운 발언이 난무한 상황을 이해하기 난감한 듯했다. 그러나 굳이 설명하려 하지는 않았다. 아들이 사는 곳이 더 이상 불안한 폭력의 현장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4학년에 다니는 여학생이 아주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i think... jhkim

먼 옛날 위대한 선왕들이 대륙을 정복할때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것은 그를 따르게 하는 카리스마보다는 대의명분이었습니다.. 여기에 선왕들의 지덕체가 아우러져 수만은 병사로 하여금 거칠고 험한 전쟁터를 달리게 하고 승리를 거머쥘 수 있게 한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Talk/etc.  |  2008/06/1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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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책.. ㅎㅎ 내용은 이렇다고 하네요

잘나가는 기획팀의 위차장 , 승승 장구하며 특진을 거듭하여 동기들보다 훨씬 먼저 차장으로 승격한 위차장에게 다른 동료들은 나의 쾌속질주를 위한 일종의 소모품에 불과합니다.잘나가던 위차장에게 갑작스럽게  기획팀에서 헥헥대며 기울어가는 프로젝트1팀으로 발령인사를 받은 것입니다.든든한 빽처럼 받들어 모시던 '철혈상무에게 따지러 간 위차장...다소 마음에 안정을 주는 고백을 듣게 되니...그 사연인 즉슨...조만간 프로젝트1팀은 산산이 해체되어 통합될 예정이고 1팀원들은 싸그리 정리해고 대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위차장의 역할은?  트로이의 목마...1팀에 소속되어 스파이의 역할을 하며 자신에게 팀사정을 속속들이 보고해주라는 것이었습니다.그럼 쥐도새도 모르게 '철혈상무'는 딴지를 걸고 넘어질 테고...약속한 프로젝트 120억 수주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순간...1팀을 고스란히 회사에서 퇴출 시켜버리는 좋은 구실이 되는 것이지...이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위차장은 슬슬 눈치만 보며 약속된 목표달성의 시간, 아니 팀해체의 시간만 기다리고 있던 중...회사의 고문인 '인도자'를 만나 뜬구름 잡기 같은 이야기를 듣고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나 아닌 다름 사람을 생각하며 다름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 위차장에게는 그리 익숙치 아니 지금껏 하지 않았던 사고방식인데.. 이런 위차장에 변해가는 모습을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배려'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잔잔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고객만족 경영, 고객 가치 창조등등 고객을 배려하는 듯한 숱한 구호를 만들어 내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고객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배려하고 있습니까? 아니 고객의 입장에 서서 생각은 해보고 있을 까요? 계량적인 수치만으로 고객을 다 알아 버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과연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의 문제를 생각해 보았는지? 고객들이 클레임을 걸때마다 마냥 억울해 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주는 건 비싼 거고, 남이 주는 건 공짜여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닌지... 책을 덮으며 많은 후회와 부끄러움을 가져다 준 정말 좋은 책이었습니다.

  책의 초반부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남들에게 많은 가치를 안겨 줄수록 돌아오는 가치도 늘어납니다. 남을 위하는 마음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지요."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고객에게 많은 가치를 안겨 주려고 노력하는 것, 얄팍한 상술이 아닌 진심으로 고객에게 다가가는 것, 아마도 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한 가장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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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 가치, 배려
      Talk/Book  |  2008/06/0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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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는 1928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의사시험에 합격하였고 의사가 되어서 편안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일생을 바꾼 사건을 경험한 후로 안락한 삶을 버리고 혁명가의 길에 뛰어들게 됩니다.

대학생시절 체는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이것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로 각색하기도 했죠).

여행 도중에 미국과 유럽의 농장주들에게 박해받고 있는 남미의 가난한 농민들과 빈민들을 목격하게 되었는데요. 이후 체는 빈부격차, 계급문제 등에 대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열심히 공부하였고 결국 자본주의와 타협할 수 없는 공산주의 혁명가가 됩니다.

이후 28살에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게 되었고 둘은 힘을 합쳐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켜 당시 자본주의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던 독재정부를 무너뜨리고 쿠바혁명을 달성합니다.

혁명 후에 쿠바재무국장이 되었는데요. 체는 본래 보헤미안적이고 낭만적인 성격의 소유자이였기에 한곳에 안주하는 생활에 실증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37세일때 공산주의의 모토인 세계혁명을 실천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앙골라에 건너가 그곳에서 게릴라전을 펼쳤지만 실패하고 39세때 다시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에 참여하였다가 포로로 잡혀 총살됩니다.

.......................

체 게바라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립니다. '세계혁명' 이라는 대업을 이루기위해 직접 실천하였던 위대한 영웅적인 면모와, 한편으로는 잔인하고 무능력한데다가 과대망상증과 소영웅주의에 빠진 몽상가라는 두 평가가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땐 두개 다 맞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체 게바라가 쿠바재무국장이었던 시절 쿠바의 경제는 나락으로만 떨어졌고 게릴라전을 펼쳤을 때도 그의 작전능력과 정보수집능력은 매우 형편없었습니다. 볼리비아에서는 그의 오판으로 인해 부하들 뿐만아니라 그자신도 총살되었습니다.  또한 체는 매우 잔인했는데요. 혁명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회의적인 생각을 가진 부하들은 자신이 직접 그자리에서 총으로 쏴죽이기도 하고 쿠바혁명에 반대하던 시민들은 처형시켜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체가 확실히 뜨거운 피를 가진 세기의 풍운아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겠죠. 쿠바 장관이었던 시절에는 몸소 농민들과 함께 농사일을 하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등 단 한시도 나태해지지 않고 노동을 몸소 실천하였습니다. 또한 안주하지 않고 전세계를 누비며 대업을 이루기위해 발로 뛰어다닌 그 정열은 체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에는 불가능한 이상을 품자"

체의 이 명언에 그에게 배울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나이에 의사로서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것을 스스로 마다하고 혁명의 길에 뛰어들어 39세에 요절할 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삶을 살아온, 불꽃같이 타오르는 혁명가.  자신이 한번 품은 이상과 대의에 목숨까지 내걸고 직접 뛰어들 수 있었던 그 패기와 정열. 자신의 게릴라동지들과 함께 정글이나 오지를 전전하며 동고동락했던 그 우애.

보통의 사람들은 부귀공명을 좇고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바리죠. 보통의 사람들은 젊었을 적 자신이 품었던 이상과 정열을 잃은 채 숨막히는 사회에 동화되어 무미건조하게 살아가죠. 보통의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거나 무모한 것에는 현실적인 판단이 앞서 그것을 마다하려고 하죠.

체의 불꽃과도 같은 인생은 세상에 파묻혀사는 우리가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를 다시끔 되돌아보게 해줍니다.

................................

1. 피델 카스트로 역시 이전 독재자 바티스타에 비하면 나은 편이고 교육과 의료에 힘써 쿠바 출신 석사, 박사학위자가 부쩍 늘어났고 전체 시민의 평균수명은 78.2세까지 올라갔지만 어쨌든 독재자라는 비난은 면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전세계의 사회당, 공산당이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사회주의 내지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반면에 쿠바는 아직 정치적 자유가 별로 확보되지 못했지요. 쿠바의 인권실태는 1970~80년대의 한국과 비슷한 정도라고 합니다(엠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

그런 반면에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처럼 오명을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마침 체 게바라가 살해된 직후인 1968년 전유럽과 미국에서 반전평화운동, 신문화운동 등등 학생과 지식인층, 젊은 직장인층까지 참여한 거대한 규모의 시위가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그들 시위대의 우상으로 방금 죽은 체 게바라가 등장합니다. 이때부터 위로 눈 치켜뜨는 체 게바라 초상화가 전세계인들에게 알려졌지요.

또한 1980~1990년대 남미의 정치적 민주화 과정에서 극우 독재자들이 저지른 만행들이 널리 알려졌는데(이게 작은 규모의 만행이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니카라과의 소모사만 30만명, 과테말라 우익군사정권은 20만여명을 살해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남미인들에게 또한번 체 게바라가 부각되었지요.

2. 체 게바라가 유난히 존경을 받는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1) 공산주의자 치고는 인명을 존중하는 편이었다.

체 게바라는 군율에 대단히 엄격해 주민 물건 빼앗아온 소년병을 총살해버린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바티스타군 포로들에게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었지요. 본인이 의사라서 치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게릴라로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한 예로, 훗날 체의 최측근이 되어 볼리비아행에도 동참한  다리엘 알라르콘 라미네스는 바티스타군에 정보를 제공하던 사람이었죠. 대숙청, 문화대혁명, 킬링필드나 봐오던 사람들에게 체 게바라는 호치민과 더불어 신선한 충격이었을 겁니다.

2)소련으로부터의 자주성을 주장했다.

대체로 미국이든 소련이든 강대국에 사대하는 위성국의 지도자들이 더욱 폭력적이고 잔인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약한 지지기반을 보충할 수 있으니까요. 스탈린이 내세운 대위 출신 김일성은 자신보다 좌파활동경력에 있어 훨씬 공이 많은 남로당파, 국내파, 연안파, 소련파 공산주의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런 이치를 간파한 모양인듯, 체 게바라는 쿠바 공산당원들에게 항상 소련으로부터의 자주성을 강조했습니다. 민중의 지지와 지식층(여론형성층)의 호의적인 평가를 얻기 위해서는 자주적이어야 한다고.. 지금 북한이 주체사상 주체사상 하지만 그것은 과거 소련의 간섭 하에서 정착된 숙청체제의 연장에 다름아니지요.

3)서구인을 건드리지 않았다

체 게바라가 서구인들로부터 호감을 산 이유에는 그가 외국인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도 주효하게 작용합니다. 오사마 빈 라덴,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어떤 저항세력보다도 동정을 살수 없는 것은 그가 서구 민간인을 죽였기 때문이지요. 체 게바라는 위해를 가하기는 커녕 미국의 언론인들의 취재요청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를 서구인, 서구사회에 개방적인 인물로 보이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첨언하면 공산주의라고 하여 다 나쁘다고만 볼수는 없습니다. 서유럽과 일본공산당은 이미 냉전종식 수십년전에 의회민주주의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좌파정책을 추구하기로 방침을 정했지요. 무엇이 어찌되었든 중요한 것은 정치적, 시민적 자유의 인정 여부입니다.

쿠바와 베트남의 공산주의는 비록 이러한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으니 전망이 밝을수는 없었지만 외세 간섭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는 것, 그리고 이전의 체제보다 낫다는 신념을 시민들에게 제공한 것은 사실이죠.

3. 체 게바라의 죽음은 볼리비아 정부보다 미국 정부가 더욱 강력하게 재촉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볼리비아의 대통령이던 바리엔토스는 체 게바라를 죽이면 남미인들이 들끓고 일어날까봐 처형에는 반대했지만, 미국에서는 합참의장 렘니처 장군이 체 게바라 처형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분위기가 그쪽으로 흘러 바리엔토스에게 체 게바라 처형압력을 가하게 됩니다.

출처 : 장 코르미에 저, <체 게바라 평전>, 실천문학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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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 인생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저 세 가지 이야기일 뿐입니다.


먼저 인생의 점들을 잇는 것(connecting the dots)에 대해서입니다.

전 리드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 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하다가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위해 대학을 나온 양부모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었죠. 하지만 제가 태어난 순간에 변호사 부부는 마지막 순간에 여자 아이를 입양하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대기자 명단에 있던 제 양부모들은 한밤중에 이런 전화를 받게 됩니다.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입양하시겠습니까?" 양부모님은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죠."

그런데 양어머니는 대졸도 아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안 나와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몇 달 후 양부모님이 저를 대학까지 가르치겠다고 약속한 후에야 친어머니는 입양에 동의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순진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퍼드대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6개월 후 대학생활은 그만한 가치가 없어보였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또 대학교육이 그것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알 수 없었습니다.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을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잘 될 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 돌아 보았을 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 후엔 재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보다 더 흥미 있어 보이는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5센트짜리 콜라병을 팔아 끼니를 때우기도 했습니다. 일요일이면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을 걸어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순전히 호기심과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훗날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드리죠. 당시 리드 칼리지는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와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 손으로 아름답게 그린 서체 예술이었습니다. 정규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으므로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 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글자체의 요소인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아름답고, 유서 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어서 전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 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PC에는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가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가 미래와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그 무엇이든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현재가 미래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여러분의 가슴을 따라 살아갈 자신감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험한 길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모든 차이를 빚어냅니다.


두 번 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제가 차고에서 애플사를 세운 것은 제가 20세 때 일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 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작품, 매킨토시를 출시했고 전 30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어떻게 자기 회사에서 해고당할 수 있냐고요?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1년 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말이죠.

저는 인생의 초점을 잃어버렸고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배 벤처 세대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 같았습니다. 제게 넘겨진 배턴을 놓쳐버린 것 같았습니다.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창업자)를 만나 이렇게까지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실패의 본보기였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습니다.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성공이란 중압감 대신 찾아온 초심자의 가벼움, 불확실함.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후 5년 동안 저는 'NeXT'와 'Pixar'를 세우고 지금은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Pixar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NeXT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NeXT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입에 쓴 약이었지만 제게는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인생이 배신하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저를 계속 움직이게 했던 힘은 제 일을 사랑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연인이 여러분에게 의미하는 것처럼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은 여러분의 삶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이고 여러분이 위대하다고 믿는 그 일을 하는 것만이 진정한 만족을 줄 것입니다. 위업을 달성하는 것은 당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 입니다. 그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세요. 현실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전심을 다해서 찾아내면 그 때는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위대한 관계들이 그러한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더 나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추구하십시오. 안주하지 마십시오.


세 번 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매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위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 글에 감명 받은 저는 그 이후로 지난 33년 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며칠 연속 'No'라는 답을 얻을 때마다 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곧 죽는다'는 생각은 인생의 결단을 내릴 때마다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의 두려움은 '죽음' 앞에선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죽을 몸입니다. 그러므로 가슴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저는 1년 전쯤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악성종양이 보였습니다. 그때까진 췌장이 뭔지도 몰랐죠. 의사들은 거의 치료할 수 없는 종류의 암이라고 했습니다. 또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 밖에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 동안 해줄 것을 단 몇 달 안에 다 해내야 된다는 말이었고 가족들이 임종할 때 쉬워지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조직검사를 받았는데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 췌장에서 암세포를 채취하는 조직검사였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하면서 갑자기 울먹거리기 시작했답니다.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희귀한 종류의 췌장암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감사하게도 지금은 완치되었습니다.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 십 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지 않길 바랍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죽어서까지 가고 싶어 하진 않죠.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죽음은 삶을 대신하여 변화를 만듭니다. 죽음은 구세대를 대신하도록 신세대에게 길을 터줍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곧 신세대입니다. 그러나 머지않아서 여러분도 구세대가 되어 사라져 갈 것입니다.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타인의 생각의 결과물에 불과한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타인의 견해가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를 삼키지 못하게 하세요. 또 가장 중요한 것은 가슴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의 가슴과 영감은 여러분이 되고자 하는 바를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이죠.


제가 어렸을 때 '지구백과'라고 하는 놀라운 책이 있었는데 저희 세대에게는 바이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시적 감각으로 살아있는 책이었지요.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로 제작된 책이었습니다. Google이 등장하기 35년 전 책으로 된 Google같은 거였죠.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최종판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겁 없는 사람이나 히치하이킹 할 수 있는 풍경입니다.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습니다.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 제 자신에게도 항상 그러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시작을 위해 졸업을 하는 여러분에게 동일한 바람을 가집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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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lk/Story  |  2008/05/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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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변혁기의 엇갈린 운명

 

저자 장세진 교수는 《삼성과 소니》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전자산업의 최강자 자리를 누렸던 소니가 갑작스럽게 쇠락한 이유와 삼성전자가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게 된 진짜 이유를 경영의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고 규명했다. 많은 이들은 이 두 기업의 엇갈린 운명을 디지털 변혁기 전략의 차이라고 보았으나 이 책에서는 단순한 전략의 차이로는 이들 기업의 경영성과를 설명하기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진짜 원인으로 기업 문화에 기반한 조직 프로세스와 각 사업부분을 장악하는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십을 꼽았다.

소니는 창의성에 기반한 하드웨어와 콘텐츠를 아우르는 최상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지녔다. 하지만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이 흔들리며 각 사업부는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서로 경쟁하는 이기적인 사일로(silo) 조직으로 변해버렸다. 반면 삼성은 특유의 스피드와 과감한 투자, 그리고 강한 실행력으로 소니를 추월했다. 하지만 점차 복잡하고 고도화하는 경영 환경은 이건희 회장의 ‘황제경영’과 비서실 조직으로 감당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현재의 삼성은 10년 전 전성기의 소니와 매우 닮아 있다. 소니는 최고경영자의 막강한 카리스마로 조직이 통솔되며 전성기를 누리다가 전문경영인체제로 바뀌면서 전략실행 능력이 무능해지게 되었다. 소니가 현재 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는 현재의 삼성 경영자들에게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삼성이 내외의 견제와 복잡한 경영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뀌었을 때, 지금과 같은 일사분란함과 실행중심의 조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두 전자거인의 숙명

 

삼성전자와 소니는 S-LCD라는 협력을 이루어냈으나, 최근 소니는 샤프와 손을 잡고 차세대 LCD 공장을 짓기로 발표했다. 이렇듯 삼성과 소니는 서로 협력하고 견제하며 끊임없이 경쟁하는 숙명에 있다. 그런데 두 기업의 가능성과 한계는 둘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 시대 모든 기업에게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지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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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lk/Book  |  2008/05/0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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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면과 콜라
라면은 화학적으로 칼슘과 결합을 잘하는
성질이 있어 칼슘부족을 일으키기 쉽다.
그리고 콜라도 칼슘과 잘 결합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둘을 같이 먹으면
칼슘결핍을 가지고 온다.

* 우유와 설탕
우유에 설탕을 넣으면 단맛 때문에 마시기는
쉽지만 비타민B1의 손실이 커진다.

* 오이와 무
오이에는 비타민 C가 존재하지만
칼질을 하면 아르코르비나제라는 효소가 나오고
이 효소는 비타민 C를 파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무와 섞으면 무의 비타민 C는 파괴될 것이다.

* 초콜릿과 우유
우유의 유지방과 초콜릿의 유지방이 결합하면
성인병을 유발시킨다.

* 땅콩과 치즈
치즈와 땅콩에는 지방이 많이 들어있어
성인병을 유발하기 쉽고 인산칼슘이 만들어져
흡수되지 않고 배설되어 버린다.


- 복지부 직원 전용 게시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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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lk/Story  |  2007/06/0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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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딸이 7살일 때 이야기입니다.
가까운 피아노 학원을 다니다가
이사를 하는 바람에 학원을 옮겨야 하는데
꼭 전에 다니던 학원을 다니고 싶어 해서
아이 걸음으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학원에 걸어 다닐 때입니다.

어느 날 오후 현관문 앞에서
큰 소리로 엄마를 부릅니다.
"그래! 의진이 왔니? 문 열렸으니 들어와."
그러자 의진이가 자랑스럽게 큰소리로 외칩니다.
"엄마! 제 손에 든 것이 많아서 문을 열 수 없어요!"

무슨 소린가 하여 문을 열었더니 딸아이가
양손 가득 쓰레기를 잔뜩 들고 서있었습니다.
어찌 된 거냐고 물으니 언니오빠들이
학원 근처 분식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고 갔다면서
아이스크림 껍데기, 떡볶이 컵 등을 주워서
양손 가득 들고 학교 앞에서부터
걸어서 집으로 가져 온 것입니다.

아파트 올라오는 언덕에서 쓰레기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써서 들고 온 티가 납니다!
얼굴이 상기된 채...
손등엔 떡볶이 컵에서 흘러내린 국물이 주르륵...

"온 세상이 더러워질까 봐 제가 다 들고 왔어요!"

순간 엉뚱하다 생각했지만
칭찬을 많이 해 주었습니다.
의진이의 그런 예쁜 마음이
온 세상을 깨끗하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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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lk/Story  |  2007/06/0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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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위독한 병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어떤 의사도 감히 왕의
병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나섰다가 병을 고치지 못하면
해를 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한 의사가 왕의 병을 고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 의사가 왕에게 바칠 약을 만드는 사이
왕은 의사의 적들로부터 그를 모함하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의사가 적에게 매수되어
왕을 죽이려 하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침내 의사가 약을 다 만들어 왕에게 바치자.
왕은 자신이 받은 편지를 내밀었습니다.
왕은 자신이 받은 편지를 읽는 동안
아무 의심 없이 의사가 만든 약을
모두 마셨습니다.

편지를 다 읽고 겁에 질려 있는 의사에게
왕은 말했습니다.
"나는 자네를 믿소."
얼마 뒤 왕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선인들은 의심하기 보다는
차라리 속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속지 않기 위해 뭐든지
의심하며 살아갑니다.
한두 번 속지 않으려고 늘 의심하는
불행한 삶을 택하는 거지요.

그러나 자기 목숨을 걸고 남을 믿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당신은 주변 사람들을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까?


- 막시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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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lk/Story  |  2007/06/0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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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아버지의 지갑을 보았습니다.
싸구려 지갑... 너무 오래되어서 낡은,
흙이 묻어 있는 지갑이었습니다.

늘 아버지의 물건들은 낡고 닳았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형편이 좋지 않아
학교 등록금을 반밖에 내지 못한 저는
대학교에서 제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무능력함에 너무 화가 나고
학교 측의 대응에 분이 올라와서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무능력하고 바보 같아서
사람들에게 속기만 하고, 다른 아버지들처럼
학교 등록금 하나 못 내주냐고.

감정표현에 서툰 분이시라
그냥 묵묵히 제 화를 다 받아주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께서 무능한 자식의 학교등록금을
벌기 위해 중국으로 일을 하러 가십니다.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이...

며칠 전에 다시 아버지의 지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아빠 지갑은 왜 이렇게 낡고 지저분해?”
아버지의 대답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거야 너희 오빠가 쓰다가 버리려는 지갑을
내가 몇 년 째 쓰고 있으니깐 그렇지...”

여태 비싼 지갑 하나, 값나가는
구두 한 켤레 사보신 적 없는 아버지.
백화점이라는 곳에 가서 물건을 살 생각조차
못하신 아버지의 지갑을 보니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아버지의 생신에도, 어버이날에도
아무 것도 해드리지 못한 저는
다음날, 아버지께 좋은 지갑을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도 지갑에 넣었습니다.
꼭 건강하게 돌아오시라고,
죄송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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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설거지를 하면서 말했다.

"애기 좀 봐요!"
그래서 난 애기를 봤다.
뚫어져라 한 시간 동안 쳐다보고만 있다가
아내에게 행주로 눈을 얻어맞았다.

아내가 청소를 하며 말했다
"세탁기 좀 돌려줘요."
그래서 난 낑낑대며
세탁기를 들고 빙빙 돌렸다.
힘들게 돌리고 있다가 아내가 던진
바가지에 뒤통수를 맞았다.

아내가 빨래를 널며 말했다.
"방 좀 훔쳐요."
그래서 난 용기 있게 말했다.
"훔치는 건 나쁜 거야."
그랬더니 아내가 빨래바구니를 던졌는데
그걸 피하다가 걸레를 밟고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내가 출근하는 내게 말했다.
"문 닫고 가요."
그래서 문을 닫았다.
나갈 수가 없었다.
한 동안 고민하며 서 있는데
화장실에 가려던 아내가 날 보더니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내쫓았다.

여러분! 저 착한 남편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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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 착한 남편
      Talk/Story  |  2007/05/0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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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연휴를 앞두고 일흔을 훌쩍 넘긴
엄마가 지명이 가까운 큰딸에게 전화를 했다.

이번 연휴에도 시댁일로 친정엔
발걸음하기가 어렵다는 걸 아는 엄마가
딸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새삼스레 주소를 확인했지만
무심한 딸은 성의없이 대답을 하곤
별생각 없이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연휴 전날, 퇴근길의 남편이
편지 한 장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파주 어머님이 편지를 보내셨네. 어서 읽어 봐."

남편의 재촉 속에 받아 든 편지는
또박또박 글자 하나마다 힘주어 쓴,
눈에 익은 엄마의 글씨가 분명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편지를 든
내손이 파르르 떨렸다.
조심스레 봉투를 열자 비상하는
학의 그림이 담긴 연하장이 나왔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연하장을 펼쳤다.

제일 윗부분에 사위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글이 보이고 아래는 외손자의
초등학교 입학을 축하하는 글과 함께
임진강변 어느 곳에서 찾아냈을
네잎클로버 하나를 붙여 놓았다.

사위와 딸에 대한 애틋한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음이,
그렁대는 눈물 속에서도 선명히 보였다.

어느새 내 눈물 하나가 편지 위로 툭 떨어지고,
애써 무심한 척 곁눈질로 장모님의 글을
읽어가던 남편의 코끝도 빨개졌다.

"참... 우리 장모님은 사위를 부끄럽게 하시네.
여보, 걱정하지마! 큰사위 절대로
장모님 실망 시키지 않을 테니.
야, 우용아 네가 큰 소리로 외할머니 편지 읽어라.
네 엄마 운다."

남편의 말에 아이가 더듬더듬,
그러나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가는
친정엄마의 짧은 편지는
남편과 내게, 그리고 어린 아이에게까지
올곧은 부모 노릇이 어떤 것인지를
조분조분 따스한 마음으로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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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 부모님, 어머니의 사랑
      Talk/Story  |  2007/05/0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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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저에게는 언제나 안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인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시원한 물가에 나를 눕혀 주오
내 아픈 몸이 쉬도록 눕혀 주오
내 형제에게 이 말을 전해 주오
화재는 완전히 진압되었다고

신이시여, 출동이 걸렸을 때,
사이렌이 울리고, 소방차가 출동할 때,
연기는 진하고 공기는 희박할 때,
고귀한 생명의 생사를 알 수 없을 때,
내가 준비되게 하소서.

신이여!
열심히 훈련했고잘 배웠지만
나는 단지 인간사슬의 한 부분입니다.
지옥 같은 불 속으로 전진할지라도 신이여,
나는 여전히 두렵고, 비가 오기를 기도합니다.
내 형제가 추락하거든 내가 곁에 있게 하소서.
화염이 원하는 것을 내가 갖게 하시고
그에게 목소리를 주시어.
신이시여!
내가 듣게 하소서.

저희 업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저희 모든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지키게 하여 주소서

신이시여!
내 차례가 되었을 때를 준비하게 하시고
불평하지 않고 강하게 하소서
내가 들어가서 어린아이를 구하게 하소서
나를 일찍 거두어 가시더라도 헛되지는 않게 하소서
그리고 내가 그의 내민 손을 잡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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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 소방관
      Talk/Story  |  2007/05/0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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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엄마에게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얼마 전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죽은 남편이 가해자로 몰려 그들은
맨몸으로 길거리로 쫓겨났습니다.

간신히 헛간을 빌려 가마니를 깔고
변변찮은 이불과 옷가지 몇 개만으로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아침 6시에 집을 나가 빌딩 청소를 하고,
낮에는 학교 급식을 돕고
밤에는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며 살았고
집안일은 초등학교 3학년 맏이가 맡았습니다.
참으로 고된 삶이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는 냄비에 콩을 잔뜩 안쳐 놓고
집을 나서며 메모를 썼습니다.

영호야. 냄비에 콩을 안쳐 놓았으니
이것을 조려 저녁 반찬으로 해라.
콩이 물러지면 간장을 넣어 간을 맞추면 된다.
- 엄마가 -

고된 삶에 지칠 대로 지친 엄마는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에
수면제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두 아이가 가마니 위에서
이불을 덮고 나란히 잠들었는데 맏이의 머리맡에
"엄마에게!" 라고 쓴 편지가 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보는 순간 엄마는 수면제를 버리고
맏이가 만든 콩자반을 울며 울며 먹었습니다.
눈물범벅이 된 채...

"엄마! 오늘 엄마 말대로 콩이 물러졌을 때
간장을 부었는데 동생이 짜서 못 먹겠다고 투정해서
한 대 때렸더니 울다 잠들었어요.
열심히 콩을 삶았는데... 엄마! 용서해 주세요.
내일은 저를 꼭 깨워 콩 삶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엄마! 피곤하지요? 꼭 건강하세요. 사랑해요.
엄마 고생하는 것 저희도 다 알아요. 먼저 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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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 가족 이야기
      Talk/Story  |  2007/05/0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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